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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뇌의 화살, 흔들리는 평안, & 무엇이 최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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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7-01-15 18:49 조회16,82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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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목숨은 정해져 있지 않아 얼마를 살는지 알 수 없다. 사람의 목숨이란 비참하고 짧으며 고뇌로 엉켜 있다. 태어나면 죽음을 피할 길이 없으며 늙으면 죽음이 온다. 실로 생이 있는 자의 운명은 이런 것이다. 익은 과일은 빨리 떨어질 위험이 있듯이 태어난 자는 죽지 않으면 안 된다. 그들에게는 항상 죽음의 두려움이 따른다. 이를테면, 옹기장이가 만든 질그릇이 마침내는 모두 깨어지고 말듯이, 사람의 목숨도 또한 그와 같다. 젊은이도 장년도, 어리석은 이도 지혜로운 이도 모두 죽음 앞에는 굴복하고 만다. 모든 사람은 반드시 죽는다. 그들은 죽음에 붙잡혀 저 세상으로 가지만, 아비도 그 자식을 구하지 못하고 친척도 그 친척을 저 세상에서 구해낼 수 없다. 보라. 친척들이 애타는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지만 사람은 하나씩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소처럼 사라져 간다. 이렇듯 세상 사람들은 늙음과 죽음으로 인해 사라져 간다. 그러나 슬기로운 이는 세상의 참모습(실상) 을 알고 슬퍼하지 않는다. 그대는 온 사람의 길을 모르고, 또 간 사람의 길도 모른다. 그대는 생과 사 두 끝을 보지 않고 부질없이 슬피 우는가. 미망에 붙들려 울고불고 해서 무슨 이익이라도 생긴다면 현자들도 그렇게 할 것이다. 그러나 울고 슬퍼하는 것으로는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없다. 더욱더 괴로움이 생기고 몸만 여윌 따름이다. 스스로 자신을 해치면서 몸을 여위게 하고 추하게 만든다. 그렇다고 해서 죽은 사람이 어떻게 되는 것도 아니지 않는가. 그러므로 울며 슬퍼하는 것은 부질없는 것이다. 근심을 버리지 않는 사람은 점점 더 고뇌를 겪게 된다. 죽은 사람 때문에 운다는 것은 더욱 근심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또한 자신이 지은 업으로 인해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라. 모든 살아 있는 자는 죽음에 붙잡혀 떨고 있지 않는가. 사람들이 여러 가지를 염원할지라도 그 결과는 다르게 나타난다. 기대에 어긋나는 것도 이와 같다. 보라, 세상의 저 모습을. 가령 사람이 백 년을 살거나 그 이상을 산다 할지라도 마침내는 친족들을 떠나 이 세상의 목숨을 버리게 된다. 그러므로 존경하는 사람의 말을 듣고 죽은 사람을 보았을 때에는 ‘그는 이미 내 힘이 미치지 못하게 되었구나’ 라고 깨달아, 슬퍼하거나 탄식하지 마라. 이를테면, 집에 불이 난 것을 물로 끄는 것과 같다. 지혜롭고 총명한 사람은 걱정이 생겼을 때는 이내 지워 버린다. 마치 바람이 솜을 날려 버리듯이 자신의 즐거움을 구하는 사람은 슬픔과 욕심과 걱정을 버려라. 자기 번뇌의 화살을 뽑으라. 번뇌의 화살을 뽑아 버리고 거리낌없이 마음의 평안을 얻는다면 모든 걱정을 초월하고 근심 없는 자, 평안에 돌아간 자가 될 것이다.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화를 내고 남을 비방하는 사람이 있다. 또한 마음이 진실한 사람이라도 남을 비방하는 일이 있다. 그러나 성인은 비방하는 말을 들을지라도 그것에 동하지 않는다. 성인은 무슨 일에나 마음이 거칠어지지 않는다. 욕심에 끌리고 소망에 붙들린 사람이 어떻게 자기 견해를 초월 할 수 있을까. 그는 자신이 완전하다고 생각하며 그대로 행한다. 그는 또한 아는 대로 떠들어댈 것이다. 누가 묻지도 않는데 남에게 자기의
계율과 도덕을 선전한는 사람, 스스로 자기 일을 떠들고 다니는 사람, 진리에 도달한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거룩한 진리를 갖지 못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편안히 마음이 안정된 수행자기 계율에 대해서, 나는 이렇게 하고 있노라 하면서 뽐내지 않고, 이 세상 어디에 있더라도 번뇌로 불타지 않는다면 그는 거룩한 진리를 지니고 있는 사람이라고 진리에 도달한 사람들은 말한다. 때묻은 소견을 미리 만들고 고치며 치우쳐 자기 안에서만 훌륭한 열매를 보는 사람은 흔들리는 평안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사물에 대한 집착을 확실히 알고 자기 견해에 대한 집착을 초월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때문에 사람들은 그런 좁은 소견의 울타리 안에 갇혀 그것을 집착하고 진리를 등진다. 사악을 쓸어 없애버린 사람은 이 세상 어디를 가든 모든 생존에 대해 편견이 없다. 사악을 물리친 사람은 허위와 교만을 버렸는데 어찌 윤회에 떨어질 것인가. 그에게는 이미 의지하고 가까이할 아무것도 없다. 모든 일에 기대고 의지하는 사람은 비난을 받는다. 그러나 기대고 의지함이 없는 사람을 어떻게 비난할 수 있겠는가. 그는 집착하지도 않고 버리지도 않는다. 그는 이 세상에서 모든 편견을 쓸어버린 것이다.

세상에서 사람들이 훌륭하다고 보는 것들을 흔히 으뜸가는 것이라 하고, 그밖에 다른 것들은 여러 가지 견해에 붙들려 모두 뒤떨어졌다고 한다. 그러므로 그는 논쟁을 극복할 수 없다. 그는 본 것, 배운 것, 계율이나 도덕, 사색한 것에 대해서 자신 안에서 어떤 결론을 내리고서 그것만을 집착한 나머지 그 밖의 다른 것은 모두 뒤떨어진 것으로 안다. 사람이 어떤 일에만 몰두한 나머지 그 밖의 다른 것은 모두 하잘것없다고 본다면, 그것은 대단한 장애라고 진리에 도달한 사람들은 말한다. 그러기 때문에 수행자는 본 것, 배운 것, 사색한 것, 또는 계율이나 도덕에 구애를 받아서는 안 된다. 지혜에 대해서나 계율이나 도덕에 대해서도 편견을 가져서는 안 된다. 자기를 남과 동등하다거나 남보다 못하다거나 또는 뛰어났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진리에 도달한 사람은 이미 가지고 있던 견해를 버리고 집착하지 않으며 지혜에 대해서도 특별히 의존하지 않는다. 그는 여러 가지 다른 견해로 분열된 사람들 틈에 있으면서 당파에 맹종하지 않고 어떤 견해일지라도 그대로 믿는 일이 없다. 그는 양극단에 대해서 여러 생존에 대해서 이 세상에도 저 세상에도 원하는 바가 없다. 모든 사물에 대해 단정할 만한 고집이 그에게는 조금도 없다. 그는 이 세상에서 본 것, 배운 것, 또는 사색한 것에 대해서 티끌만한 망상도 갖지 않는다. 어떠한 견해에도 집착하지 않는 사람이 어찌 이 세상에서 망상 분별하겠는가. 그는 망령된 생각으로 분별하지 않고, 그 어느 한 가지 견해만을 유달리 존중하지도 않는다. 그는 모든 가르침을 원하지도 않고 계율이나 도덕에 매이지도 않는다. 이러한 사람은 피안에 이르러 다시는 이 세상에 돌아오지 않는다.

<경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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