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대학의 향연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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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나그네 작성일16-10-20 22:21 조회25,049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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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육바라밀이 뭔지도 몰랐고, 스님이 오셔서 바라밀이 수행이며, 보시,지계,인욕,정진,선정,지혜 이렇게 여섯가지 수행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보시에는 재보시만 있는 줄 알았는데,법보시, 무외시, 무재칠시도 있다는 걸 알았고, 그 중에 무외시와 무재칠시는 제가 더 노력해야 하는 덕수행을 위해 꼭 필요한 수행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얼굴 표정을 밝게 하고, 환한 얼굴로 따듯한 말 한마디 하며, 남의 어려움이나 고민을 함께 들어주고, 즐거움이 있을 때는 함께 웃어주는, 상대방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무외시!
무외시와 비슷한 화안시,안시,신시,언시,심시,상좌시,방사시(찰시)의 무재칠시!
나의 눈빛,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가 다 보시가 되고, 모든 보시는 마음이 같이 해야 온전한 보시가 되는 것을 글을 쓰며 알게 됩니다.
오탁악세는 말 그대로 다섯가지 탁함으로 가득차 있는 세상을 말하며, 사람들의 마음이 탐진치로 인해 흐려지고, 여러가지 욕망에 집착하면서 생기는데 겁탁,견탁,번뇌탁,중생탁,명탁이 있네요.겁탁이 잘 이해는 되지 않으나 아마도 동업처럼 시대(시간)전체가 탁한 것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모든 극락과 지옥이 내 안에도 있듯이, 오탁악세도 세상에도 있고 내 안에도 있습니다. 이러한 탁함,부정적 생각, 마구니, 나쁜 업들이 내 안에 있지만, 그걸 인정하고, 알아차리며, 베풀고, 계를 지키며, 참고, 열심히 정진하면, 선정, 지혜로 나의 오탁악세가 부처님세계가 될 것입니다.
저의 업이 질기고 질겨서 노력하는데도 쉽게 돌아가려 합니다. (돌아갈데도 없는데 어디로 돌아갈려는건지...)
육바라밀 수행을 온전히 하면 그게 바로 마하반야라는 가르침. 수행 아닌게 없다는 스님 말씀을 항상 염두에 두고 그저 할 뿐...인 온전한 바라밀을 위해 계속 노력하겠습니다.
법화경을 하며 저도 이제야 처음으로 교리공부를 하는데, 스님께 살아있는 교리공부를 배우려고 지금까지 게으름을 부렸나봅니다. 감사합니당.^^
***글 쓸때 오래 걸려서, 글을 잘 안 쓸려는 것도 저의 업 중에 하나라 숙제 올리는 것도 잘 안하고, 댓글도 잘 안다는데 이러한 업도 수행으로 해 나가겠습니다.
이런 글쓰기는 넘 힘들어요 휴~^^;
숙제 올리시는 글들 보면 다들 작가들이신 듯...
대단하셔요????
자연성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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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바라밀과 오탁악세
1.육바라밀 요약
바라밀이란 생각이 지배하는 이세상(차안)에서 지혜가 지배하는 저 세상(피안)으로 가는 것이다.
바라밀의 핵심은 반야바라밀인데, 반야(지혜보다 포괄적인 의미)바라밀은 바라밀의 총론으로 육바라밀 실천의 토대이면서 동시에 각론인 육바라밀의 수행을 통하여 그 최종목표인 부처님의 지혜 즉 마하반야(성불, 일체종지)에 도달한다.
반야바라밀을 증득한다는 것은 곧 지혜가 성숙한다는 것인데 그렇게 되면 남을 위해 하는 일이 많아지고 그것이 곧 자기를 위하는 일이고 그것이 곧 수행인 것이다.이때 이타행이 곧 자리행이 된다.
2.육바라밀에 대한 소견
예를 들어 누군가 제게 어떤 일을 부탁했습니다.
반야바라밀에 눈을 떴다면 그 일은 곧 내 일이며,남과 나의 구별이 없습니다. 그래서 재물이든 능력이든 그 부탁을 흔쾌히 들어주는 무주상보시가 될 것이며(보시), 적극적으로 남을 돕는다는 대승의 계를 지키는 것이며(지계), 그 일이 비록 힘든 일이더라도 한결같은 마음으로 참아질 것이며(인욕), 귀차니즘과 게으름에서 벗어나 본래부터 힘든 일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며(정진), 마음을 고요히 집중시켜 그 일에 방해되는 생각으로부터 벗어날 것이며(선정), 결국은 나를 막고 있는 어리석은 생각 즉, 무명에서 벗어나 (지혜)를 얻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반야바라밀이라는 엔진을 달고 육바라밀이라는 수행의 법륜을 굴려 성불에 이른다고 (바퀴를 굴릴수록 엔진이 튼튼해지는 신기한 차네요????) 비유하고 싶습니다.
이런 시각에서 육바라밀을 보았을때 앞서 도반님들이 올리셨던 글처럼 이 세상 모든 일은 다 수행과제이며 모든 자리는 수행처라고 할수 있습니다.
얼마전 백중기도를 드리러 아이들을 데리고 절에 매일 왔었습니다. 기도가 끝나면 공양 때라 공양준비를 해주셨던 보살님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었는데, 그때 그 보살님이 "이게 내 수행이야"라고 하셨던 게 기억납니다. 그때는 그 말씀이 그냥 제 마음 편하게 해주시려고 건네신 따뜻한 말씀이라고생각만 했는데 육바라밀을 공부해보니 그 또한 진정한 수행이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러면 저는 진정한 수행을 하고 있을까요?
어떠한 일을 마주할 때 저의 마음은 제 스스로에게 한계를 짓고 고질병인 게으름이 앞서고 쓸데없는 생각만 많아집니다. 무주상보시에 대해 스님께서 누누히 말씀하셨는데 법문때 밀려오던 감동은 다 어디로 가버리고 제 생각은 꽉 막혀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제가 "엄마 말을 듣고 있는거야? 왜 골백번 말하게 해?"라며 꽥꽥 소리를 질렀었는데 저도 아이들과 다를 게 하나도 없었네요. 이참에 스님과 도반님들 앞에서 게으름 하나라도 이겨봐야겠다는 서원을 세워야겠습니다. 갈 길이 멀지만 스님과 도반님들이 오래오래 저를 감시해주시면 조금씩 나아지라 믿습니다.
3.오탁악세
오탁악세란 타락한 세상에 나타나는 5가지 더러움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겁탁은 시대가 오염되어 이상한 질병, 전쟁, 테러가 많아져서 사회가 약해지는 세상,견탁은 삿된 사상으로 어지러운 즉, 자본주의와 이기주의 (특정 종교 배타주의) 로 얼룩진 세상,번뇌탁은 중생들의 탐,진.치 번뇌가 사람들을 지배하는 세상,중생탁은 중생의 과보가 저하됨에 따라 마음이 둔하고 몸이 약해지는 세상,명탁은 이러한 현상으로 인해 인간의 수명이 점점 짧아지는 것을 말합니다.
오탁악세를 공부해보니 이 세상 모든 인간이 8정도와 6바라밀 수행에 발만 들여도 이러한 악세에서 벗어날 수 있을텐데 하는 안타까움이 먼저 듭니다. 그런데 왜 미륵보살님은 이런 흉흉한 세상에 빨리 안 오시고 인간들이 좀 더 정화되고 성숙한 세상에 오시는거죠? 인간들이 더 이상 타락하지 않고 스스로 정화 및 구제되길 기다리시나요? 그런데 인간에게 그럴 능력과 의지가 있기는 한가요? 인간들에게 있는 불성을 믿으셔서 그런가요?
또 한가지는, 오탁악세는 겁탁, 견탁, 번뇌탁, 중생탁, 명탁의 순서가 있습니다.그런데 읽어보면, 그 흐름 상 번뇌탁이 치성해져서 견탁을 만들 것 같고 견탁이 치성해져 겁탁을, 겁탁이 치성해져서 중생탁을 그래서 결국에는 명탁이 되는 것 같습니다.
번뇌탁->견탁->겁탁->중생탁->명탁 이렇게요.
번뇌탁 부터 시작하지 않고 겁탁과 견탁부터 시작하는 이유가 있나요?
이상입니다~
혜서원 합장
보시에는 재보시만 있는 줄 알았는데,법보시, 무외시, 무재칠시도 있다는 걸 알았고, 그 중에 무외시와 무재칠시는 제가 더 노력해야 하는 덕수행을 위해 꼭 필요한 수행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얼굴 표정을 밝게 하고, 환한 얼굴로 따듯한 말 한마디 하며, 남의 어려움이나 고민을 함께 들어주고, 즐거움이 있을 때는 함께 웃어주는, 상대방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무외시!
무외시와 비슷한 화안시,안시,신시,언시,심시,상좌시,방사시(찰시)의 무재칠시!
나의 눈빛,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가 다 보시가 되고, 모든 보시는 마음이 같이 해야 온전한 보시가 되는 것을 글을 쓰며 알게 됩니다.
오탁악세는 말 그대로 다섯가지 탁함으로 가득차 있는 세상을 말하며, 사람들의 마음이 탐진치로 인해 흐려지고, 여러가지 욕망에 집착하면서 생기는데 겁탁,견탁,번뇌탁,중생탁,명탁이 있네요.겁탁이 잘 이해는 되지 않으나 아마도 동업처럼 시대(시간)전체가 탁한 것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모든 극락과 지옥이 내 안에도 있듯이, 오탁악세도 세상에도 있고 내 안에도 있습니다. 이러한 탁함,부정적 생각, 마구니, 나쁜 업들이 내 안에 있지만, 그걸 인정하고, 알아차리며, 베풀고, 계를 지키며, 참고, 열심히 정진하면, 선정, 지혜로 나의 오탁악세가 부처님세계가 될 것입니다.
저의 업이 질기고 질겨서 노력하는데도 쉽게 돌아가려 합니다. (돌아갈데도 없는데 어디로 돌아갈려는건지...)
육바라밀 수행을 온전히 하면 그게 바로 마하반야라는 가르침. 수행 아닌게 없다는 스님 말씀을 항상 염두에 두고 그저 할 뿐...인 온전한 바라밀을 위해 계속 노력하겠습니다.
법화경을 하며 저도 이제야 처음으로 교리공부를 하는데, 스님께 살아있는 교리공부를 배우려고 지금까지 게으름을 부렸나봅니다. 감사합니당.^^
***글 쓸때 오래 걸려서, 글을 잘 안 쓸려는 것도 저의 업 중에 하나라 숙제 올리는 것도 잘 안하고, 댓글도 잘 안다는데 이러한 업도 수행으로 해 나가겠습니다.
이런 글쓰기는 넘 힘들어요 휴~^^;
숙제 올리시는 글들 보면 다들 작가들이신 듯...
대단하셔요????
자연성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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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바라밀과 오탁악세
1.육바라밀 요약
바라밀이란 생각이 지배하는 이세상(차안)에서 지혜가 지배하는 저 세상(피안)으로 가는 것이다.
바라밀의 핵심은 반야바라밀인데, 반야(지혜보다 포괄적인 의미)바라밀은 바라밀의 총론으로 육바라밀 실천의 토대이면서 동시에 각론인 육바라밀의 수행을 통하여 그 최종목표인 부처님의 지혜 즉 마하반야(성불, 일체종지)에 도달한다.
반야바라밀을 증득한다는 것은 곧 지혜가 성숙한다는 것인데 그렇게 되면 남을 위해 하는 일이 많아지고 그것이 곧 자기를 위하는 일이고 그것이 곧 수행인 것이다.이때 이타행이 곧 자리행이 된다.
2.육바라밀에 대한 소견
예를 들어 누군가 제게 어떤 일을 부탁했습니다.
반야바라밀에 눈을 떴다면 그 일은 곧 내 일이며,남과 나의 구별이 없습니다. 그래서 재물이든 능력이든 그 부탁을 흔쾌히 들어주는 무주상보시가 될 것이며(보시), 적극적으로 남을 돕는다는 대승의 계를 지키는 것이며(지계), 그 일이 비록 힘든 일이더라도 한결같은 마음으로 참아질 것이며(인욕), 귀차니즘과 게으름에서 벗어나 본래부터 힘든 일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며(정진), 마음을 고요히 집중시켜 그 일에 방해되는 생각으로부터 벗어날 것이며(선정), 결국은 나를 막고 있는 어리석은 생각 즉, 무명에서 벗어나 (지혜)를 얻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반야바라밀이라는 엔진을 달고 육바라밀이라는 수행의 법륜을 굴려 성불에 이른다고 (바퀴를 굴릴수록 엔진이 튼튼해지는 신기한 차네요????) 비유하고 싶습니다.
이런 시각에서 육바라밀을 보았을때 앞서 도반님들이 올리셨던 글처럼 이 세상 모든 일은 다 수행과제이며 모든 자리는 수행처라고 할수 있습니다.
얼마전 백중기도를 드리러 아이들을 데리고 절에 매일 왔었습니다. 기도가 끝나면 공양 때라 공양준비를 해주셨던 보살님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었는데, 그때 그 보살님이 "이게 내 수행이야"라고 하셨던 게 기억납니다. 그때는 그 말씀이 그냥 제 마음 편하게 해주시려고 건네신 따뜻한 말씀이라고생각만 했는데 육바라밀을 공부해보니 그 또한 진정한 수행이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러면 저는 진정한 수행을 하고 있을까요?
어떠한 일을 마주할 때 저의 마음은 제 스스로에게 한계를 짓고 고질병인 게으름이 앞서고 쓸데없는 생각만 많아집니다. 무주상보시에 대해 스님께서 누누히 말씀하셨는데 법문때 밀려오던 감동은 다 어디로 가버리고 제 생각은 꽉 막혀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제가 "엄마 말을 듣고 있는거야? 왜 골백번 말하게 해?"라며 꽥꽥 소리를 질렀었는데 저도 아이들과 다를 게 하나도 없었네요. 이참에 스님과 도반님들 앞에서 게으름 하나라도 이겨봐야겠다는 서원을 세워야겠습니다. 갈 길이 멀지만 스님과 도반님들이 오래오래 저를 감시해주시면 조금씩 나아지라 믿습니다.
3.오탁악세
오탁악세란 타락한 세상에 나타나는 5가지 더러움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겁탁은 시대가 오염되어 이상한 질병, 전쟁, 테러가 많아져서 사회가 약해지는 세상,견탁은 삿된 사상으로 어지러운 즉, 자본주의와 이기주의 (특정 종교 배타주의) 로 얼룩진 세상,번뇌탁은 중생들의 탐,진.치 번뇌가 사람들을 지배하는 세상,중생탁은 중생의 과보가 저하됨에 따라 마음이 둔하고 몸이 약해지는 세상,명탁은 이러한 현상으로 인해 인간의 수명이 점점 짧아지는 것을 말합니다.
오탁악세를 공부해보니 이 세상 모든 인간이 8정도와 6바라밀 수행에 발만 들여도 이러한 악세에서 벗어날 수 있을텐데 하는 안타까움이 먼저 듭니다. 그런데 왜 미륵보살님은 이런 흉흉한 세상에 빨리 안 오시고 인간들이 좀 더 정화되고 성숙한 세상에 오시는거죠? 인간들이 더 이상 타락하지 않고 스스로 정화 및 구제되길 기다리시나요? 그런데 인간에게 그럴 능력과 의지가 있기는 한가요? 인간들에게 있는 불성을 믿으셔서 그런가요?
또 한가지는, 오탁악세는 겁탁, 견탁, 번뇌탁, 중생탁, 명탁의 순서가 있습니다.그런데 읽어보면, 그 흐름 상 번뇌탁이 치성해져서 견탁을 만들 것 같고 견탁이 치성해져 겁탁을, 겁탁이 치성해져서 중생탁을 그래서 결국에는 명탁이 되는 것 같습니다.
번뇌탁->견탁->겁탁->중생탁->명탁 이렇게요.
번뇌탁 부터 시작하지 않고 겁탁과 견탁부터 시작하는 이유가 있나요?
이상입니다~
혜서원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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