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대학의 향연 (6) > 불교대학


법문을 다 배우오리다. 불도를 다 이루오리다.

불교대학

불교대학

불교대학

불교대학의 향연 (6)


페이지 정보

작성자 나그네 작성일16-10-16 19:36 조회24,651회 댓글0건

본문

[부처님의 십력과 사무소외]
부처님의 성품(덕성)을 10가지 힘으로 표현하는 데, 이는 시처비처력, 업력, 근력, 욕력, 성력, 지처도력, 숙명력, 천안력, 누진력이라 합니다.
1.십력을 알기 전과 후
부처님의 십력을 공부하면서 그에 비하면 제가 얼마나 작은 존재인가 새삼 느꼈습니다.십력을 알기 이전에는 막연히 부처님은 업의 인연과 과보를 여실히 보시고 번뇌를 여의고 해탈하셨으며 지혜와 자비를 구족하신 부처님으로만 여겼습니다.그런데부처님의 십력이라는 상세한 설명을 보니 저는 부처님 앞에 똑바로 설 용기가 나지 않습니다.부처님께서 저의 교만, 아상, 게으름, 어리석음, 이기심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만든 저의 업을 훤히 아실테니 너무나 부끄럽고 무서워서 어디 숨어버리고 싶다는 생각부터 듭니다. 그래서 참회와 수행이 필요한가 봅니다. 요약하자면, 십력을 알기 전에는 부처님은 그저 제 마음의 의지처였다면 십력을 안 후에는 그에 나아가 부처님은 경외의 대상이며 과거 저의 말, 뜻, 행동에 대해서는 참회를 하고 미래의 말, 뜻, 행동에 대해서는 8정도를 지키는 데에 더욱 충실해야겠다는 생각에 미쳤습니다.
2.시처비처력과 분별의 구분
인간에게 있어서 옳고 그른 것의 구분을 분별이라 합니다. 그런데 부처님의 십력 중에는 옳고 그른 것을 잘 아는 힘을 시처비처력이라 합니다. 왜 그 힘을 분별이라 하지 않고 시처비처력이라는 표현을 썼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분별이 오음과 수상행식, 업이 만들어낸 틀을 통한 판단이라면 시처비처력은 인간의 행동을 때, 곳, 경우, 상대등 모든 경우의 수를 염두에 두고 객관적으로 적당한지를 바르게 판단하는 힘인가 봅니다. 제가 눈을 뜨고 딱딱하고 울퉁불퉁한 커다란 무엇인가를 만지면서  코끼리 다리가 곧 코끼리인줄 착각할때 부처님께서는 코끼리 전체를 보시는 것과 같은 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여튼, 저는 개인적으로 부처님의 시처비처력이 가장 부러웠습니다. 뭔가를 판단할 일이 생길때 부처님의 시처비처력을 감히 떠올려보고 싶습니다.
[부처님의 사무소외]
부처님의 사무소외란 부처님께서 다른 사람때문에 법을 설하기를 주저하거나 꺼리지 않는 네 가지 덕목을 말합니다. 그 내용은 일체지 무소외, 누진 무소외, 설장도 무소외, 설진고도 무소외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법을 설하심에 있어서 일체의 두려움이 없으면서 그 방법도 언제나 자상하게 타일러주십니다.
1.'이것이 맞는 것일까 아닐까', '이 말을 해도 될까 말까'를 항상 고민하는 중생의 입장에서 진리를 설하시는데 그 어떤 의심도 꺼리낌도 없는 확신이란 도대체 얼마나 확고한 신념일까 생각해보았습니다. 100% 라는 숫자로 표현하기는 우스울 것같고 왜 "금강"이라는 표현을 썼는지 어렴풋이 이해가 갔습니다.
2.역으로 부처님께서 금강과 같은 진리에 대한 확신으로 제게 진리를 설해주셨을때 과연 저는 이를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를 생각해보았습니다. 이는 제 근기, 욕망, 성품에 대한 문제와 연결이 됩니다.여기서 저는 좀 엉뚱한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만약 부처님께서 5년전에 꿈에 나타나 "네가 게으름과 아상을 버리지 못한다면 크게 아플 것이다"라고 말씀해주셨다면 그 순간부터 정신을 번쩍 차렸을까요? 부처님께 죄송하지만 전 너무나 게으르고 제 틀을 꽉 붙들고 있느라 그때도 알아차리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와 같이 낮은 근기에는 방편이 필요한가봅니다.
2주전에 방편품을 읽었을때는 재미난 동화같았는데 지금 사무소외와 연결시키니 중생들에게 방편이 왜 필요한 지를 알것 같습니다.
또한, 중생마다 갖가지로 펼치는 부처님의 방편을 보며 부처님께서 중생을 얼마나 어여삐 여기시는지 그 자비심의 깊이와 크기를 감히 가늠해봅니다. 많지도 않은 달랑 2명의 자식을 둔 엄마로서 방편이라고는 소리를 꽥꽥지르는 것 뿐이니...참 부끄럽습니다.
이상으로 부끄러운 글을 마칩니다.
혜서원 합장
********************************************************
부처님의 십력과 사무소외
저는 이번 주제를 공부하며 제일 먼저 든 생각이  '나는 왜 불교를 믿는가?' 였습니다. 믿음을 갖는 이유중 제일 많이들 말씀하시는 것이 기복 사상이고 제 나름 생각으로는 가족간이나 친구들의 권유도 상당하며 또 각 개인들간의 여러 굴곡적 인생의 여파로 삶을 진지하게 풀어보려는 의지의 표현도 믿음을 가지려고 하는  하나에 속할거라 생각합니다.
저의 경우는 맨 후자에 속하기도 하고 가족의 영향도 상당하기도 한데 한번은 불교말고 다른 종교로 인해 원죄라는 죄책감에 시달려 본적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불교의 업과 연기법을 몰랐던 관계로 죄가 있다는건 알거 같은데 그걸 해결할 방법을 몰라서 한동안 방황했던 기억이 납니다.
사실 불교를 한국도 아니고 미국에서 접하기는 하늘의 별따기정도여서 그당시에 다른 종교에서 받았던 정신적 충격은 상당했었던것 같습니다... 그런데 지금 저는 돌고 돌아서 불교를 믿고 부처님을 믿게되었습니다. 이유가 무얼까 생각해보니 다른 종교에서 말해주었던 원죄에 대한 불안과 궁금증은 무조건적인 믿음만 가지고는 해결할수 없는 문제였기 때문이였습니다.부처님이 설해주신 12연기와 업을 통해 본연의 나를 깨닫는 과정이 없고서는 그 어떤 것도 이 우주적 이치를 이해할수 없기 때문입니다.
십력과 사무소외를 공부하면서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부분이 있다면 부처님의 능력을 표현하신 이유는 십력을 표준삼아 중생들이 수행을 닦으라는 깊은 뜻이라는 부분과 진정한 대자대비의 마음이 아니고서는 우리 인간들이 느끼는 괴로움, 탐진치를 뽑는길을 단언해줄 사람이 없다는 부분이였습니다.
저는 일년 남짓 불교를 믿으며 마음속에 불교가 아니면 안된다 또 부처님이 아니고서는 내 세계관이나 인생관을 똑바로 내세울수 없으며 무명에 휩싸여 갈팡질팡 했을거라고 확신합니다. 사실 불교를 확실히 믿기전에는 엄마나 가족들이 행하는 신행을 보며 나도 언젠가는 저렇게 해야지...하면서도 어쩌다 한국에 가서 절에 가면 절차를 몰라서 불교 지식이 없어서  나중에 나 바쁜일 다하고( 돈벌고 애 키우고 내조하는 ...) 나이들어 하는 일정도로 생각했던게 사실입니다.
믿음은 일도 아니고 책임져야할 일이 아니라 생활속에 묻어나야하는데...그걸 제일 중요한걸 잃고 나서 알아차린게 많이 힘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불교가 최고의 진리임을 알면서도 저는 얼마나 많은이들에게 부처님에 대한 이야기를 했나 생각해 봅니다. 사실 저가 일하는 일터에서나 애들과 관련된 사람들을 만나면 한국분들이면 의례 종교를 물어보고 전도에 아주 힘을 많이 쓰는게 보입니다. 제가 불교를 믿는다고 하셔도 막무가내 이시죠. 어떤분은 미국에서 애 잘키울려면 애들이 마구 뛰어놀수 있는 체육관이 넓은 자기네 종교로 오라고 합니다. 참으로 웃기기도 한데 이번 사무소외를 공부하며 그분의 전도 영량과 저의 일상의 표교 활동에 대해 반성을 해보았습니다.
그분의 전도 방식이 제가 웃을만한 일이 아니란게 어떤 믿음이던지 간에 그분은 자기의 믿음에 확신을 가지고 누가 들어도 웃을만한 이야기를 정말 진지하게 하셨다는것입니다. 그분도 자신이 겪은 경험을 토대로 한것일거니 마냥 웃고 넘길 일은 아니라는 거지요.
저도 부처님이 주신 경험이 여러가지인데 왜 어디에 가서 부처님 이야기를 많이 않고 속으로만 생각하는지... 아직 알아야 할 것들이 많아서 섣부로 부처님에 대해서 아는 체 하는것이 두려워 그런 이유도 있지만 상대방이 종교 이야기를 하면 싫어할까봐 또는 이미 다른 종교 사람이라 일찌감치 포기하는 이유도 있다고생각합니다. 부처님이 가지신 능력은 우리가 가질수는 없지만 그 능력을 믿고 따르고자 하면 언젠가는 할수 있다고  생각의 폭을 넓혀야겠습니다. 일체지 무소외, 누진무소외,설장도무소외, 설진고도무소외...부처님 법만이 우리의 괴로움을 해결하고 업의 연결고리인 윤회의 길을 끊을수 있다고 믿는 사람으로써 나혼자 내길을 가는것이 아니라 법의 길을 같이 가야한다는것...
자꾸 제 입에서 부처님의 법이 노래마냥 나와서 들려줘야 제친구도 제 가족도부처님 법을  알아차릴 것이고 또한 제가 부처님 법에 따라 청정하게 살아야만 어느것에도 거리낌 없이 법을 말할수 있다는것...
어렵게 생각하면 발도 못내밀 포교활동이겠지만... 작은 실천 즉 항상 부처님께 감사하고 회향하는 마음을 가지며 저와 제일 가까운 사람들 먼저 살뜰하게 챙기는 마음이 점차 커져서 큰 실천의 원동력이  될거라 생각합니다.
부처님의 사무소외를 항상 염두에 두고 포교에도 적극적인 불자가 되고 싶습니다.
운오도 합장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일요 법회 : 매주 일요일 오전 10:30 AM
선방 모임 : 매주 수요일 저녁 7:00 PM
불교 대학 : 매주 화요일 저녁 7:00 PM부터
105 Barnett Blvd Highland Village, TX 75077     Tel : 972.238.8005
COPYRIGHT ⓒ 달라스 보현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