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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0火.제13권10.보살문명품:인연과보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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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흰구름 작성일24-09-30 15:34 조회4,728회 댓글15건

본문

제13권 10.보살문명품 수업준비로
본문을 숙독해 오시고요(*서적이 없는 분들은 밴드에 올려논 전자책을 보시면 됩니다.)

보살문명품 내용의 주제가 되는, 업, 선근, 인연법 중 특히 인연에 대해 공부하되, 정의되어 있는 학구적인 설명보다는 각자의 자기 생각으로 설명하고 싶은 법우님은 그리해도 됩니다.

댓글목록

흰구름님의 댓글

흰구름 작성일
#*시아원(한희주) 
숙제 올립니다 ()

인연은 산스크리트어 ‘Hetu-pratyaya’를 번역한 단어입니다. ‘Hetu’라는 것은 어떤 결과의 직접적이고 내재적인 출발점인 원인(因)을 말하고, ‘Pratyaya’는 그 원인을 도와 결과를 낳게 하는 외적인 조건이나 상황(緣)을 말합니다. 농부가 씨앗을 뿌리는 것을 인이라 한다면, 연은 그 씨앗이 잘 자랄 수 있는 환경 즉 온도나 날씨·강우량·땅의 비옥도·병충해와 농부의 정성과 관리 등등을 말하는 것입니다. 즉 인연은 어떤 결과를 일으키는 근본원인과 그 원인에게 영향을 주어 변화를 가져오게 하는 온갖 시간·공간·정신·물적인 조건이나 상황과의 만남이, 얼마나 불가사의한지 그 신비로움을 내포하고 있는 독특한 불교 용어입니다. 그래서 이 단어는 이 세상의 일체만물은 각각의 인과 연이 만나 잠시 만들어졌다 흩어지는 것뿐으로, 영원한 것은 하나도 없다는 불교의 핵심사상을 담고 있습니다.

인(hetu)이 연(pratyaya)을 만나면 인연으로 멈추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는 반드시 어떠한 것이든 결과(果, phala)를 맺게 되는데, 이를 인연과법이라 하고 줄여서 인과법(因果法)이라 합니다. 인과 연이 있으면 반드시 과가 있고, 과가 있다는 것은 인과 연이 만났다는 것입니다. 고대 인도에서는 이 인연과법에 관한 다양한 주장이 있었습니다. 이 중 연기법은 불교 고유의 인연과법을 말합니다.
                            - [출처 불교신문]

이 사바세계에 살고 있는 우리는 수많은  인연을 맺으며 살아오고 있습니다. 
잠깐 스치고 지나가서 기억 조차 못하는 인연이 있기도 하고, 태어나서 부터 현재까지 이어지는 인연으로는 나의 가족인 부모님과 형제자매가 있습니다. 
저의 경우 아버지께서는 너무 일찍 돌아가셨어요.  기억 조차 희미해질 만큼 아빠에 대한 인연은 멀어져 버렸습니다.  그러다 보니 엄마에 대한
깊은 연민으로 안타까운 마음과 사랑하는 마음과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빠에 대한 마음은 거의 남아있지 않고 막연하게 부처님 자비광명으로 좋은  곳에 가셨다 하는 
안심하는 마음 만 남았습니다 .

이와같이 저의 부모님과의 인연만 보더라도
불교의 인=결과를 초래하는 직접적안 원인에도 경중이 있는것 같습니다.

보살명문품의 여러가지 비유처럼
부모 자식의 인연 또한 같지 않은 것처럼 제가 세세생생에 지어온 인으로 부처님 불법과 이어지는 직접적 원인을 심어 두었기에
이번 생 미국에서도 삼보께 귀의할 수 있는 연을 이어주는 우리 엄마 밑에 태어난것 같습니다.  만약 엄마가 먼저 돌아가시고 아빠가 사셨다면 나의 불교 인연은 끊어졌으리라 생각 됩니다. 

또한 미국 달라스 보현사에서 불교 대학에서 공부할 수 있는 인연도 없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세세생생에 항상 부처님계신 곳에 나서 삼보님께 귀의하는 인연을 맺어 끝내는 확철대오 견성성불 하기를 발원합니다 ()

흰구름님의 댓글

흰구름 작성일
#*정명(박순홍) 
숙제 올립니다.

연기(緣起)는 인연생기(因緣生起) 즉 인(因: 직접적 원인)과 연(緣: 간접적 원인)에 의지하여 생겨남.  또는 인연(因緣: 통칭하여, 원인)따라 생겨남의 준말로 ,  '연(緣: 인과 연의 통칭으로서의 원인)해서 생겨나 있다'  혹은 '타와의    관계에서 생겨나 있다'는 현상계(現象界)의 존재 형태와 그 법칙을 말하는 것 으로서 이 세상에 있어서의 존재는 반드시 그것이 생겨날 원인[因]과 조건[緣]하에서 연기의 법칙에 따라서 생겨난다는 것을 말한다. 
 
연기의 법칙, 즉 연기법(緣起法)을 원인과 결과의 법칙 또는 줄여서 인과법칙(因果法則) 혹은 인과법(因果法) 또는 인연법(因緣法)이라고도 한다. 엄밀히   말하면, 고대 인도에서는 인과법에 대해 여러 이론들이 있었으므로, 연기법은 고타마 붓다가 설한 인과법, 또는 불교에서 주장하는 인과법 
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고타마 붓다는 《잡아함경》 제12권 제299경 〈연기법경(緣起法經)〉에서 연기법은 자신이나 다른 깨달은 이가 만들어낸 것이 아니며 여래가 세상에 출현하고 출현하지 않음에 관계없이    우주(법계)에 본래부터 존재하는 보편 법칙, 즉 우주적인 법칙이며, 자신은 단지 이 우주적인 법칙을 완전히 깨달은[等正覺] 후에 그것을 세상 사람들 을 위해 12연기설의 형태로 세상에 드러낸 것일 뿐이라고 말하고 있다.
연기관계(緣起關係)에는 유전연기(流轉緣起)과 환멸연기(還滅緣起)의 두 가지가 있다. 연기관계를  인과관계(因果關係) 라고도 하는데, 예를 들어, 불교의 근본 교의인 4성제에서 고(苦) · 집(集)의 2제   (二諦)의 관계는 괴로움이라는 결과와 괴로움을 생겨나게 하는 원인으로서의 갈애 또는 망집의 관계로서, 미혹되게 하고 괴로움을 겪게 만드는   인과관계 즉 유전연기(流轉緣起)이며, 이에 대해  멸(滅) · 도(道)의 2제(二諦)의 관계는 모든 괴로움이 소멸된 이상의 경지인 열반의 증득이라는결과와 열반을 증득 하게 하는 원인으로서의 불교의 수행의 관계로서, 미혹을 벗어나게 하고 괴로움을   벗어나게 하는 인과관계 즉 환멸연기(還滅緣起)이다.
연기에 대한 불교 교의를 연기설(緣起說) 이라고 한다. 고타마 붓다가 12인연(十二因緣) 또는 12연기(十二緣起)의 연기설을 가르친 이래 불교 역사에는 여러 가지의 연기설이 출현하였다. 부파불교의 업감연기(業感緣起),  중관파 의 공사상(空想),  유식유가행파의  아뢰야 연기(阿賴耶緣起), 《대승기신론의  진여 연기(眞如緣起) 또는  여래장연기 (如來 藏緣起),  화엄종의 법계연기(法界緣起) , 진언종의 6대연기(六大緣起) 등이 있다                                                                          (참조 : 위키백과)

우리는 인연의 소중함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을까?                               
무시 이래로 시작된 악인이던 선인이던 그에 맞는 연따라 육도 윤회를 수없이 반복하고 있음을 오늘의 나라는 모습을 통해서 보게 되고 지금의 내 모습을 대하 노라면 내생의 모습이 그려짐에 처음 접했 을 떄는 오싹한 기분이 들다가 이제는 좀 더 절실한 생각이 앞선답니다.                                                       
지금의 도반들이 전생에는 나의 아버지 이며, 어머니이며, 누이로서, 형으로서의 가족으로서 때로는 스승이며, 제자로서 함께 동거동락을 하다 연이 다하여 내생을 기약한 것이 금생인지 아니면 몇 겁동안 육도를 윤회하다 그 분들의 정성어린 인연 따라 다시 금생에 태어났다고 생각한다면 너무도 소중한 인연인지라 한 분 한 분이 고맙고 또 고마울 뿐입니다.

어제 법회시간 때 스님께서 "색즉시공 공즉시색"의 뜻을 아는가?하고 물었을 때 인연연기가 떠올라 제 나름의 의견을 올려봅니다.
                                                           
색 (무릇 형상이라 칭하는 모든 것들)은 인연연기에 의해 한순간 생하고 한순간 멸한다고 봄에 있다고 할 수도 없고 없다고 할 수가 없는 것으로 색이란 색이 아니고 다만 이름이 색일뿐이란 뜻으로 금강경의 사구게에서 나오는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와  4상인 무아상, 무인상, 무중생상,  무수자상과 이름만 다를 뿐으로 "색즉시공 공즉시색"과 진리에 다달음에는 일맥상통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것은 반야심경에서는 "공"이란 단어를 수없이 강조하셨지만 금강경에서는 단 한번도 "공"을 말씀하지 않고 대신 4상이 없음을 깨달으라는 가르침을 주실 뿐으로 모두가 우리들이 만들어 내고 지어낸 것일 뿐 본 바탕은 공이라고 설하셨다고 생각합니다.

흰구름님의 댓글

흰구름 작성일
#*자성화(신은영)
인연(因緣)

어릴 때부터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다.’ 라는 말을 자주 들었습니다. 이 인연이라는 말이 불교용어였다는 걸 이제서야 알았네요. 인연이라고 하면 뭔가 운명론 갖고 숙명론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공부하다 보니, 인연은 내가 지어논 것이고, 내가 지어가는 것임을 알게 됩니다.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니, 전적으로 운명이고 숙명은 아니지요. 이에 대해서 부처님도 숙명론이나, 신이 다 정해놓았다거나, 다 우연이라는 견해는 그릇된 견해라고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인연이란 연기라고도 불리우는데, 인연생기(因緣生起)의 줄임말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인이라 결과를 발생케하는 직접적인 원인이고, 연이란 간접적인 원인입니다. 그래서 인은 직접적이고 연은 간접적이라는 뜻으로 친인소연(親因疏緣)이란 말을 쓰기도 한다네요. 예를 들어 농부가 씨를 뿌를 뿌려 싹이 자란다면, 씨는 직접적인 원인이고, 땅, 거름, 햇살, 물 등은 간접적인 원인입니다. 인이 없어도 연이 없어도 결과는 생기지 않는 이치입니다. 

우리도 부모님의 씨가 화합하여, 자궁이라는 태 안에서 보호받으며, 영양분을 보충받아 생겨났고, 구름도, 꽃들도, 나무도, 돌도, 태양도, 별도,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인연으로 생겨나지 않는 것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들중 영원한 것을 찾으라면 하나도 찾을 수가 없네요… 우리는 물론이거니와, 별도 태양도 이 우주도 시간이 지나면 성주괴공 하니까요..

잡아함경 13권 335 제일의공경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이것이 있기 때문에 저것이 있고, 
이것이 일어나기 때문에 저것이 일어난다
이것이 없기 때문에 저것이 없고, 
이것이 멸하기 때문에 저것이 멸한다’

실로 이 법칙에 어긋나는 것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바닷물이 따뜻한 햇빛을 받아 수증기로 증발되어 구름이 되고, 그 구름이 무거워지면 비가 되어 떨어지고, 그 비는 또 바닷물로 흘러들어갑니다. 애초에 물이 없다면 구름도, 비도 바다도 없겠지요.

우리의 존재도 마찬가지로, 무명-행-식-명색-육입-촉-수-애-취-유-생-노사의 12연기를 계속 반복하고 있습니다. 육입을 통해 들어오는 느낌에 좋다 싫다의 감정을 일으키고, 거기에 집착하고, 그러면 또 집착의 인연으로 생로병사 우비고뇌하는 일을 무한반복하겠지요. 탐진치 삼독에 물들고 오욕을 즐기면서 게으르고, 즐거운 일, 재미있는 일에 집착하고, 시대마다 다른 행복이라는 관념에 집착하고 하면서요. 그렇게 억겁을 죽고 살고 하면서 다행히도 부처님법을 만난것이 인연이지만, 그것도 나라고 하는 것이 언젠가 지은 씨앗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불교대학 공부를 하고 숙제를 하는 것도 인과 연을 만들어내고 있는 거구요.

우리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무수히 많은 인을 짓고 연을 지으면서 살고 있습니다. 내가 지은, 이 순간 짓고 있는 신구의 삼업이 어떤 결과를 만들어낼지에 대해 생각을 하고 행동하고 말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순간순간 깨어있어야 내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떤 행동을 하는지, 어떤 말을 하는지 알 수 있겠지요. 이렇게 알아차리고 행동했다면 어른답게 결과는 깨끗이 받아들어야겠죠. 술을 한잔 했다면 ‘나의 뇌세포가 죽고 혈중 알콜 해독을 위해 간이 무리하게 일을 해서 간이 나빠지겠구나’ 하면서요. 그리고는 또 간에 좋다는 음식을 먹으면서 병주고 약주고… ㅎㅎ

이렇게 알아차리고, 한 생각이라도 한 행동이라도, 보시 지계 인욕들의 선업을 더 쌓고, 정진, 선정 지혜의 인연을 많이 만들어가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육입으로 들어온 정보에 좋다싫다의 감정을 발전시켜 집착하지 않는, ‘수’에서 ‘애-취’로 넘어가지 않고 그저 그 뿐이라는 경계를 맛보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참고: 법상스님 목탁소리 연기법
불교신문 [청년을 위한 불교기초강의]연기법과 인연법 차이는 무엇인가
나무위키 , 위키백과

흰구름님의 댓글

흰구름 작성일
#*원산(안학선)
"인연"
그동안 지내오는 일상 생활속에서 드라마,영화  대화에서 수 없이 들어온 인연의 얘기지만 인연이 무엇입니까? 하면 많은 사람들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얘기 하는 것이 아닐까?  하며 대답할것이다. 부처님법을 만나기 전에는 나 또한 그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면 "인연"이란 무엇인가?
"인" 과 "연". 곧 안에서 결과를 만드는 직접적인 원인과 그. 안을 밖에서 도와서 결과를 만드는 간접적인 힘이 되는 연줄, 모든 사물의 이 인연에 의하여 생멸한다고 함. 일체 만물은 모두 상대적 의존관계에 의해서 형성된다고 한다. 동시적 의존관계( 주관과객관)와 이시적 의존관계(원인과결과)로 나뉘어진다. 어떤 결과를 만들어 내는 직접적인 원인을 "인" 이라 하고, 인과 협동하여 결과를 만드는 직접적인 원인을 "연"이라 한다. 가령 농사의 경우에 종자를 "인"이라 하고, 비료나 노동력을 "연"이라 한다. 이 경우 아무리 "인" 이 좋다 할지라도 "연"을 만나지 못하면 결과를 가져올 수 없다. 그러므로 "인"도 물론 좋아야 하지만 "연"도 또한 좋아야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이 행복하게 살려면 상생상화의 선연을 맺어야 하는 것이다. 기계적 의미의 원인과 결과 관계가 아니라 "인" 이 있어서 "연"을 만나면 반드시 과가 있다는 말인 인연과를 줄여서 "인연"이라고 한다.  "인" 이 없이 연만으로는 과가 있을 수 없고, "인" 이 있다 할지라도 "연"을 만나지 못하면 역시 과가 있을 수 없다. 인과 연이 있으면 반드시 과가 있고, 과가 있다는 것은 "인"과 "연"이 만났다는 뜻이다.(원불교대사전) 

이렇게 부처님법의 "인연"에는 원인과 결과가 이어지는 것을 알고 부터는 나의 생활에 생각과 행동이 조심스럽고 다시 한 번 생각하는 모습으로 변한것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지금의 달라진 모습에는 어머님이 맺어준 관세음보살의 "인연"이 나의 미국생활의 터닝포인트가 된것이다. 문맹으로 지내시면서 보따리 장사를 하시며 홀로 칠남매를 키우시고 베풀고 덕을 쌓으시어 동네주위에 계신 분들의 추천에  의해서 구청에서 장한 어머님상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가끔씩 저한테 하시는 말씀이 세상 살아가면서 너가 조금 손해를 본것처럼 살아 가는것이 편하다. 그때는 이세상을 바보처럼 살아가란 말이에요. 어머님은 참 이상한 말씀을 하신다고 핀잔을 주고 짜증내곤 하였습니다. 생각해보면 그 말씀이 옳은것 같읍니다. 상대를 이기려고 할때 서로의 감정이 격해지며 설사 이겼다 할 지라도 마음은  편안하지 않을 것 입니다. 이길 수 있지만 져 주는 것도 미덕일 수 가 있읍니다. 미국생활을 시작하며 젊음과 투지의 한계를 느끼며 힘들어 할때 아무 말씀도 없이 하얀 수건속에 소중하게 갖고 계신 불경책과 염주를 제 손에 쥐어 주시면서 오로지 관세음보살을 불러라. 그것이 너가 살길이다. 그후로 Los angeles, houston, miami. Sanjose. Dallas를  차량으로 이동하며 운전하면서 관세음보살을 부른것이 어머님의 주신 불경책과 염주가 "인연"이 지금 이렇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있읍니다. 나무관세음보살 

"시절인연"
시절인연 뜻은 특정한 시기에 맺어진 인연을 의미하며, 운명적으로 정해진 시기와 인연이 맞아 떨어지는 것을 말합니다.이 표현은 불교에서 유래한 말로, 인연이 있어야만 이루어질 수 있는 만남이나 사건을 의미합니다. 시절인연은 일상생활에서도 중요한 만남이나 사건이 특정 시기와 맞물려 일어날 때 자주 사용됩니다. 

2017년 그때는 유난히도 비가 많이내려 골프장이 호수로 변했을 정도로 바가 많이 내렸읍니다. 그당시 스토래지에서 일하던 사람이 금전문제로 인해 그만두고 새 사람을 채용할때 학교 선배를 만나 같이 일하면서 다행히 선배는 건축에 대한 지식이 있어 조목조목 가르쳐주며 도와 주 겠다고 하여 나에게는 큰 힘이 되었읍니다. 건물 위에 고인물이 빠지지를 못하고 여기저기 건물에 문제가 생겨 안절부절 못할때 엎친데 덮친격 으로크고 작은 사고가 발생에 선배는 갈비뼈에 금이가고 나는 세번이나 정신을 잃어 병원에 실려가는 것을 보면서 선배는 내가 끝까지 도와 주겠다고 하여 큰 감동을 받았읍니다. 그 때가 천일 기도중이며 여러 가지로 힘들고 어려운 시기에 였기에 관세음보살을 염하며 이 장애를 극복할 수 있는 가피를 내려 달라고 간절히 매달렸읍니다. 선배가 오고부터 사고는 있었지만 하나하나 원만히 해결되는 것을 겪고나니 이것이 우연이 아닌 필연으로 느끼며 관세음보살님의 가피로 저는 알고 있었습니다. 시절인연이 바로 눈앞에서 펼쳐지는 것을 알수가 있었읍니다. 나무 관세음보살. 


법상스님의 시절인연(youtube) 

사람과의 만남도 인과의 만남도 유형 무형의 일체 모든 만남은 모두 때가 있는.법이다. 아무리 만나고 싶어도 시절인연이 무르익으면 않으면 지천에 두고도 못 만날 수 있고 아무리 만나고 싫다고 발버둥을 쳐도 시절의 때를 만나면 기어코 만날수 밖에 없다. 모두 마주침은 다 제 인연의 때가 있는 법이다. 그 인연의 흐름을 거스르려 아무리 애를 써도 그것은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우주적인 질서다. 만날 사람은 꼭 다시 만나게 된다.
다만 아직 인연이 성숙하지 않았을 뿐 만나야 할 일도 만나야 할 깨달음도 인연이 성숙되면 만나게된다. 정말 만나고 싶은 사람을 아직 못 만났다면, 성공은 오지않고 실패만 자꾸 찾아 온다면, 
그렇더라도 아직 좌절 하지는 말라. 

아직 시절인연이 깃들지 않은 것일 뿐 이루어 지지 않는 것이 아니다. 마치 계단을 오르는 것처럼, 꾸준히 오르더라도 한동안은 정상에 무엇이 있는지 보이지 않는다.그러나 꾸준히 나아가고 있기 때문에 언젠가는 정상에 도착할 것이고 당신의 시절인연을 만날 것이다. 이렇듯 시절인연은 당장 겉으로 보이지 않더라도 안으로 안으로, 전체적인 인연의 질서에 의해 여무는 것이다. 그러다가 문득, 바로 그 때가 저절로 내 앞에 드러난다. 아무리 만나고 싶어도 인연이 성숙되지 않았다면 아직은 차분하게 기다려야 한다. 시절인연이 되여 만남을 이룰때 그 때 더 성숙한 모습이 될 수 있도록 다만 자신을 가꾸어야 할 때다.
너무 조급해 할 필요는 없다. 어차피 시절인연은 내가 원할 때가 아니라 그것이 일어나야 할 때
홀연히 문득 저절로  피어나기 때문이다. 그것은 나에게 달린 일이 아니라, 그것의 일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오직 지금 이 순간 내 앞에 주어진 눈부신 순간으로 돌아와 지금 여기를 가꾸는 것 뿐이다. 지금 만나는 사람, 지금 하고 있는 일 바로 지금 이것에서 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과의 인연을 가꾸는 사람에게 비로서 그토록 기다려온 시절인연은 애쓰지 않아도 저절로 깃들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가 만날 수 있는 인연은 내 밖의 상대를 만나는 것이 아니라 내안의 또 다른 나를 만나는 것일 뿐이다. 모든 만남은 내 안의 나와의 마주침이다. 아무리 싫어하는 사람도 그 사람과의 만남은 내 안의 바로 그 싫어하는 부분을 만나는 것이며 아무리 이기적인 사람을 만나도 내 안의 이기의 일 부분이 상대로 투영되는 것일 뿐 이다.그러기에 내가 만나는 모든 인연의 어느 하나 소중한지 않는 것이 없다. 그 것은 내 안의 놓치고 있던 나를 만나는 숭고한 나를 깨닫는 일 이기 때문이다. 모든 만남은 우리에게 삶의 성숙과 깨달음을 가져온다. 다만 그 만남은 담긴 의미를 올바로 보지 못하는 자에게는 그져 스쳐 지나가는 인연일 뿐 이지만 그 메세지를 볼 수 있고 소중히 받아들일 수 있는 이에게 모든 만남은 영적인 성장의 과정이요. 나아가 내안의 나를 찾는 깨어남의 여정 이기도 하다. 아직 존재의 본질에 어두워 이 만남속에 담긴 의미를 찾지 못할지라도 그 만남을 온 존재로써 소중히  받아들일 수 있다. 

우주 전체가 나를 만나기 위해 바로 이 소소한 만남이 사연을 보냈다. 나를 깨닫게 하기 위해 바로 그 사람을, 그 사연을 보내 주었다. 결코 인연을 소홀히 여기지 말라. 내면이 성숙하면 만남도 성숙하지만 내면이 미숙하면 만남도 미숙 할 수 밖에 없다. 미숙한 사람에게 만남은 울림이 없고 향기가 없다.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아직 오지 않는 시절인연을 기다릴 것 없이 그토록 기다려온 왔던 바로 그때가 바로 지금 여기 이 순간 이었음을  알아차릴 것이다. 바로 지금이지 다른 때가 아니다.  내가 지금 만나는 바로 이 사람, 이일, 지금 소;유하고 있는 이대로의 것들 매일 부딪치는 이 모든 것들이 바로 지금 내가 만나야 할 바로 그 시절인연이다. 모든 만남은 붓다의 선물이요. 신 의 사랑이다. 우리는 항상 부처를 만나며 신과 함께 있다. 지금의 시절인연을 온전히 받아 들이는 자에게만 그토록 기다려온 시절인연 또한 더 빠르게 현실이 될 것이다. 

"선원장주지 지암스님과의 지중한 시절인연에 깊은 감사 드립니다

흰구름님의 댓글

흰구름 작성일
#*녹야원(이경희)

“좋은 인연 갖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부처님께 삼배할 때 늘 하는 말입니다. 저도 다른 법우님들 같이 인터넷을 참조 해보고, 보살 문명품도 읽어보고… 제 나름의 이해로 풀어보겠습니다. 어려웠어요 ㅜㅜ
불교의 인연/ 과학의 원인과 결과..
제가 3년전쯤 거진 20년 만에 별 흥미도 없던 과학 공부를 새로 시작 했었는데요. 물리,화학,생물,미생물.. 등등.. 예전엔 시험을 위해 외우기만 했던 것이 이번엔 공부하면서 외우지 않아도 이해가 되면서 재밌게 할 수 있었습니다. 불교에서 인연과 현상이 과학에서 이렇게 풀이가 되는 건가? ‘시절 인연’이 맞으면 작용도 일어나고 소멸되기도 하는 것인가? 그렇게 나도 이런 저런 인연이 모여 업의 덩어리로 형성 된것인가?  그런 생각을 많이 하게됐던거 같습니다. 그래서 스님께서 법문 하실 때, 양자역학이라던지 과학적 예시를 들면 더 와 닿고 재밌게 이해되었습니다. 법화경 사경을 할 때도 처음 할 때와 지금은 또 다르고… 행을 닦으며 할 때 랑 머리로 이해할 때와 또 엄청 다름을 매일 느끼고 있습니다. 불교의 인연법을 믿으면서는 앞날의 불안함이나 궁금함(?)이 없어진 것 또한 좋은 인연의 결과 인 듯하여 더 정진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흰구름님의 댓글

흰구름 작성일
#*화인(홍현정)
 숙제 올립니다.

인연은 사람들 사이에 맺어지는 관계 또는 어떤 사물과 관계되는 연줄을 뜻한다. 비슷한 말로 [연고] 라고도 한다. 일의 내력 또는 이유.

불교의 [인]과 [연]을 아울러 이르는 말. [인]은 결과를 만드는 직접적인 힘이고, [연]은 그를 돕는 외적이고 간접적인 힘이다. 비슷한 말로 [유연]이 있다. 불교의 원인이되는 결과의 과정이라 할수있다. 석가모니는 ”모든 인과 연이 합하여져 생겨났고, 인과 연이 흩어지면 사라진다.“는 말을 남겼다.

인연이란 [윤회]를 불교에서 말하는 업설과 인과응보설에 의한것으로 사물을 인과의 법칙에 의해 특정한 시간과 공간의 환경이 조성 되어야 일어난다는 뜻인데, 불교 에서는 ‘삼시업’이라 하여 업을 지어 과보를 받는 시간적 차이를 세 가지로 나누고 있다. ‘순현업’은 현생에 짓고 현생에 받는 것이고, ‘순생업‘은 전생에 짓고 현생에 받거나 현생에 짓고 내생에 받는것이며, ’순후업‘은 여러생에 걸쳐서 받는 것이다.
불교적 관점에서 보면 우리가 알지 못하는 업에 의해 탄생한 결과를 우리는 우연이라고 부르는 것이된다.

부처님 공부를 하면서 [인연],[연기법]등을 열심히 알아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인연 아닌것이 없고 서로 연기되어 있지 않은것 역시도 없다는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바로 아니 감정이 요동치는 범위가 좁아지는것을 느낍니다. 만나야할 인연은 반드시 만나고, 나는 이번생 내 업대로 살아갈것 입니다. 다만 나중에 좀더 좋은 인연, 좀더 나은 업으로 살고자 함이기에 지금,여기 깨어 있으며 나를 잘 단속 합니다. 오늘도 부처님 가피속에 살고 있어 감사합니다.

흰구름님의 댓글

흰구름 작성일
#*백련화(권혜정)
숙제 올립니다.

인연이란 불교에서 원인(因)과 조건(緣)이 합쳐져 결과를 이끌어내는 원리를 의미합니다. 이 중 시절인연(時節因緣)에 대해 제 경험을 생각해보았습니다.

제가 남편을 만나게 된 과정은 불교의 시절인연을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생각됩니다. 시절인연이란 단순히 운이나 타이밍이 아니라, 원인(인)과 조건(연)이 함께 작용하여 결과를 이끌어내는 것을 의미합니다. 내가 겪었던 경험은 바로 이러한 인연의 원리 속에서 전개되었습니다.

당시 나는 친구와 함께 레스토랑을 열기로 했고, 잘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일이 예상만큼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았고, 특히 친구의 남편이 한국 음식에 관심이 없어서 사업에 대한 이해와 협력이 부족해지면서 불안함이 커졌습니다. 그러던 중 엄마가 넣어주신 기도책이 생각나서 바로 기도를 시작하게 되었어요. 기복적이긴 했지만, 당시엔 그만큼 간절했었고, 기도를 통해 내 마음을 조금씩 가다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일이 계속 답답하게 느껴지자 엄마의 권유로 108배를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600배로 기도가 늘어났고, 처음에는 레스토랑이 잘되길 바랐지만, 차츰 친구와의 관계가 더 중요해졌습니다. 그리고 기도를 하면서 내 마음은 다시 변화하여, “남편을 만나게 된다면 우리 가족과 잘 지내고,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이면 좋겠다”는 바람이 생겼습니다. 

그 후 시간이 흘러, 지인의 소개로 지금의 남편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가 바로 내가 기도 중에 바라던 조건을 충족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남편은 우리 가족과도 잘 지내고, 대화도 풍부하게 나눌 수 있는 사람입니다.

저의 이 경험은 시절인연의 원리를 잘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친구 남편의 음식 취향으로 인해 사업이 더디게 진행된 것은 하나의 조건(연)이었고, 엄마의 권유로 시작된 기도와 108배는 나의 내면과 마음을 변화시키는 원인(인)이 되었습니다. 그 결과, 나의 바람대로 남편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시절인연의 의미는 단순히 좋은 시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만들어 가는 원인과 조건이 인연을 이끌어내는 과정이라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흰구름님의 댓글

흰구름 작성일
#*성월심(정은주)
 숙제 올립니다 

■인연에 관한 학문적 고찰 

인연은 참으로 소중합니다. 이 세상의 모든 현상은 인연따라 생기소멸(生起消滅) 하니까요. 인연법을 바로 보면 괴로움에서 벗어납니다.처처가 부처님 모습이고 자비입니다. 지옥도 극락이 됩니다. 이고득락(離苦得樂)입니다. 

부처님은 보리수 아래서 인연(因緣) 연기(緣起)의 진리를 깨달아 무상정등정각(無上正等正覺)의 부처를 이루셨습니다.
원인(因)과 조건(緣)의 상호관계에 의해 삼라만상이 생겨나는 인연생기(因緣生起)를 최초로 보신 것입니다. 그것이 인연이고 연기입니다.
부처님은 만물이 생멸변화하는 법계에 상주하는 ‘존재의 법칙’이 있음을 깨달으신 겁니다.바로 인연 연기의 이치인데요, 존재의 상호의존성 또는 인과(因果)의 법칙이 그 내용입니다. 

부처님이 최초로 발견
상의상관성 인과법칙
“연기보면 고집멸도 본다”
모든 현상은 인과 연이 화합하면 생기(生起)하고 인과 연이 흩어지면 소멸합니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기므로 저것도 생긴다
이것이 없으므로 저것이 없고
이것이 멸함으로 저것도 멸한다
잡아함경에 있는 연기의 기본공식입니다. 상의상관성(相依相關性)의 공식이라고도 하는데 이것과 저것은 연기 관계(인과 관계)입니다.
인(因)이 연(緣)을 만나면 반드시 결과가 생깁니다. 이 ‘인연과’를 줄여서 인과라고 합니다.
인과는 그대로 있는 것이 아니라 다시 새로운 원인이 되고 조건이 되어 다른 존재에 관여하게 됩니다. 모든 존재는 다른 존재들과 무한히 상호의존관계를 맺으면서 인연 연기를 전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와 이웃은 둘이 아닙니다. 세상은 거대한 인연의 덩어리입니다. 

무명(無明)으로 말미암아 노사(老死)의 괴로움이 있게 되는 윤회과정을 12단계의 인과(因果)관계로 설명한 것이 12인연 즉 12연기설입니다.
연기의 이해를 돕기위해 설해진 12연기
설은 탐진치 삼독의 뿌리인 무명에서 시작됩니다.무명은 어리석음이며 번뇌의 근본으로 연기의 진리를 모르는 무지(無知)를 말합니다.
12연기는 무명이 있음으로 생과 노사가 있다는 순관(順觀)과, 무명이 멸하면 노사도 멸한다는 역관(逆觀)으로 관찰할 수 있습니다.
고뇌가 일어나고 소멸하는 과정을 일러주는 12연기설을 꿰뚫어보면 존재의 실상을 보고 어리석음의 어둠을 밝힙니다. 무명이 멸하므로 온갖 괴로움이 소멸돼 집착할 대상이 없습니다.
인연연기는 깨달음으로 이끌어주는 불교의 근본진리입니다. 그러므로 불자는 반드시 연기법대로 살아야 합니다.
모든 문제는 인과법으로 풀고, 무명이 지혜인 밝음(明)이 되고 빛(光)이 되도록 신구의 삼업(身口意 三業)을 청정히 닦읍시다. 그리고 행복의 씨앗을 심고 가꾸세요. 인연법을 보면 능히 부처님을 보며 고집멸도를 볼 수 있습니다. 

 출처:성운 스님(삼천사 회주, 동국대 석좌교수) hyunbulnews 현대불교 

■인연에 대한 저의 생각
달라스 보현사 불교대학 제4기 3학기 
첫 개강 숙제 제목으로 받아든 < 인연> 에 대해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지암 선원장 스님께서 2011년 
달라스 보현사와 인연을 맺으시고 
2017년3월17일 조계종으로 부터 
<달라스 보현사 불교대학>을 인가
받으신 후 지금까지 법상에서.
강의실에서 부처님의 정법을 전해 
주시는 내용은 늘 같았다 생각 합니다. 

■늘 "깨어있어라 알아차리라" 
그리고 2회에 걸쳐 수행 되었던 
<천일바라밀 결사 육바라밀 실천>이 끝나고▪︎제15차 49일 가을 수행이 시작된 지금 까지도 늘 강조하시는 
■"육바라밀 실천" 

이 두가지가 제가 생각하는 불교의 자비를 실천하고 지혜를 갖추게 되는 가장 기본적인 수행덕목 이라는 것을 부끄럽게 
<인연> 이라는 숙제를 하면서 오늘에야 마음으로 제대로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이 2가지를 철저히 제대로 수행.정진하지
하지 않고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겠다는 생각 또한 하게 되었습니다 
전에는 대충 힘되는대로 실천하기 쉬운것 또 하고 싶은것 위주로 수행 정진 했고
제가 못한다고 취약하다고 생각되었던
참선. 앉아서 차분히 생각하기 등은 제대로 해 본적도 드물고 또 생각으로만 해야지  하며 미루고만 있었는데 

얼마전 스님께서 강의 시간에 
<참선>에 대해서 다시한번 말씀
하시면서 "늘 행동하면서 일하면서 
알아차리고 깨어 있으면 되고 다만 
우리의 업이 몸에 많이 놀아나기 
때문에 차분히 앉아 몸을 조복받는 것도 필요하다" 고 말씀하신 것으로 
이해했던 것 같습니다 

그후 자기전에 조금씩 호흡을 
관하는 날도 있고, 올라오는 마음을 
보며 관세음보살 하는 날도 
있습니다. 저의 경우는 그날 그날 집중이 잘 되는 것으로 하고 있습니다.육바라밀 실천도 어디에 치우치지 않고 균형을 마춰가며 열심히 적극적으로  하고자 합니다.비록 제가 어리석고 게으르고 교만하고 제것을 먼저 챙기고 인색하고 너그럽지 못하지만,  <제악막작 중선봉행> 으로 무시겁으로 지어온 저의 악업을 녹이고 좋은 선업도 많이 짓겠습니다. 

불교의 근본 교리인 <인연연기>를 믿고  차근차근 연기법대로 하루하루의 삶을진실되게 제 자신과 남을 속이지 않는 삶을 산다면 선한 결과가 있다고 믿습니다 

우선 모든 인연에 감사합니다 
보현사와의 인연. 지암스님을 만나 
제대 로공부하는 인연.보현불자와 불대법우님들과 같이 공부하고 수행.정진하는 인연.저의 어머니 태에 들어 불교를 접하게된 인연.제가 일상속에서 만나는 사람과 우주 삼라만상이 제가 고맙고 감사해야 할 인연들 입니다.
이 소중한 인연들의 도움과 더불어 저의 어리석은 무명과 질긴 신구의 삼업이 청정해 지길 바라며 저의 육바라밀 적극 실천이 저의 마음의 공성이 하나되어 
보리도와 보살도를 피우는
■확철대오 견성성불 광도중생■
하고자 열심히 수행 .정진 합니다 
마하반야바라밀

흰구름님의 댓글

흰구름 작성일
#*이지연
인연에 대해 서치를 하면서 여러 자료들을 읽어보았는데 그 중 제일 와 닿았던 설명이' 세상의 일체 만물이 각각의 인과 연이 만나 잠시 만들어졌다 흩어지는 것이고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는 것 이었습니다. 일상에서 사람들과의 관계를 표현하는 용어로 주로 사용하지만 인연이라는 개념이 결국 불법의 바탕인 무상, 무아 등과 일맥 상통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살면서 사람과의 인연 외에 인과 연의 작용을 느꼈던 적이 있는데 (그때는 인연의 작용임을 몰랐지만...) 가끔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그 일이 내가 알지 못하는 어떤 이유로 하여금 일어나는데 꼭 나를 힘들게 하려고 하기 보단 어떤 합당한 이유로 인해 그 일이 생기는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었고 힘든 일들을 좀 더 편하고 지혜롭게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지암 스님께서 몇 번 언급하셨는데, 무상, 무아, 해탈 등의 불법을 잘못 이해하여 허무주의나 '공'에만 집착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고 하신것을 들으면서 아, 그럴 법도 하다 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인연의 개념을 적용해보니 그런 바람직하지 못한 경우는 '흩어진다'에만 치중한 것이지 '만들어졌다'는 부분은 간과한 때문이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여기 '잠시' 라는 부분이 중요한데 이를 통해 보면 우리가 알게 모르게 가지고 있는 집착들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잘 알려주는 것 같습니다.

흰구름님의 댓글

흰구름 작성일
#*자연성(강은아)
저는 개인적으로 '인연'이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부처님 법 만나기 전에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쓰는 인연을 좋아했고, 옷 깃만 스쳐도 인연, 이 것도 인연인데, 우리 인연은 여기까지, 이선희의 노래 '인연'...
지금은 법화경의 부처님 일대사인연, 원각경 보안보살장, 인연연기, 시절인연, 인연법...인연의 의미가 폭넓다는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원각경 보안보살장 중...
'이 몸은 마침내 자체가 없는 것이고 화합하여 형상이 이루어졌으나 사실은 환으로 된 것과 같다. 네 가지 인연이 거짓으로 모여 망령되이 육근이 있게 된 것이다. 육근과 사대가 안팎으로 합하여 이루어 졌는데 허망되이 인연의 기운이 그 안에 쌓이고 모여 인연상이 있는 듯한 것을 거짓 이름하여 <마음>이라 한다.' 

* 씨앗을 인으로 하여 햇빛, 물, 바람...연(조건)으로 꽃이 피고 과일이 맺는 걸 12연기에서 배웠고,
나의 몸을 구성하는 것도 인연으로 되고, 태어나고 살아가면서도 인연 아닌게 하나도 없다는 것을 하나씩 알아가고 있습니다.
나의 한 생각 일어나고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가 인이 되어 씨앗이 되었다가 지금의 내가 있고,
지금도 계속해서 인연을 짓고 있으며, 한 생각 일어남으로 인연연기로 이어지는 걸 조금씩 체득해가고 있습니다.
모든 것은 인과 연으로 돌아가고
나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인과 연이 되어 작용을 하며 그렇게 신구의 삼업으로 내가 만들어져가니 좀 더 각성하며 살려고 합니다. 

*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나혼자 내 머리 속으로 이 생각 저 생각, 번뇌망상을 하며 지나가지만 생각 하나하나, 행동 하나하나 다 허공에 찍힌다니, 나 혼자 찰나에 일으킨 망상(나쁜 생각)도 바로 알아차리고 참회진언을 하기도 합니다. 

* 스님께서 늘 "복 중에서 인연복이 제일이다." 하시는데 저는 복덕혜를 잘 닦아놓지 않아 이 생에서는 원하는 대로 못사는 것 같습니다.
다행히 복덕혜가 모자라는데 전생의 어떠한 인연복은 잘 지어놔서 이 생에 부처님법을 만나서 배우고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 어릴 때 친구 따라 절에 갔던 잊고 있던 기억이 가물가물 전생의 일처럼 생각이 어렴풋이 나고,
각기 다른 친구와 각기 다른 절에 초,중,고 시절 총 3번을 절에 갔었던 기억이 납니다. 고등학교때는 뭔가 간절히 부처님께 바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20대에 처음으로 엄마, 동생과 찾아간 절이 선원이였으며 내가 원하는 길이 아니였음에도(원래 어릴 때부터 엄마, 이모가 무속, 점보러 가면 따라가고 좋아했음) 선원에서 만나 뵌 많은 스님들 중에서도 공부하는 스님과 인연이 되고 보현사에서 선원장 지암스님 인연이 되어 부처님 정법을 알게되고, 이제는 그 길을 따라 가고 있으니, 저한테는 인연이 너무나 소중하고 감사합니다. 

* 인연에는 선연과 악연이 있는데 선연만 만나면 좋지만 악연도 만나게 되고 악연이 되기도 합니다.
될 수 있으면 회향을 좋게 하려고 악연은 만들지 않으려고 하나, 아직 나의 이러네, 저러네 따지는 분별심이 그런 인연을 만들기도 합니다.
수행해서 좋은 점은 이생에서 전생의 원수였는지 첫인상의 느낌이 안 좋은 인연을 만났는데 참회 기도하며 늘 수행을 하다보니, 친하지도 원수도 아닌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는 그런 사이가 된 것 같습니다.^^ 

나와 인연되어진 이 생의 인연들
스님, 부모님, 가족, 친구들...
이 생에서 좋은 인연으로 회향을 잘 하기를 바라며,
좋은 인연을 위해 기도, 독경, 염불, 참선...수행의 인을 계속해서 심고 가꿔 나가겠습니다.
나무 마하반야바라밀()

흰구름님의 댓글

흰구름 작성일
#*보장화(김경희)
보장화숙제 올립니다 
  인연이란 연기라고도 부르며, 원인과 조건을 뜻합니다. 인은 결과를 낳기위한 직접적인 원인을 의미하고, 연은 외적인 간접적인 원인을 의미 합니다. 아함경이나 아비달마구사론 등의 초기 경전에서는 씨앗이 싹을 틔울때 그씨앗을 인으로 그리고 햇빛, 물, 땅, 온도등의 조건을 연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인과 연은  씨앗이 나무로 성장하기 위하여 적당한 시기에 작용해 줘야하는 원인이 되는 것 입니다.  
  유식사상에서는 각각의  缘을 나누어( 인연因缘,연연缘缘,차제연次第缘,유력증상연有力增上缘,무력증상연无力增上缘) 마음의 작용까지 말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반야부의 공사상이 일어나면서 한역경전권에 전파되며 원인과 결과를 뜻하는 인과의 인으로  12연기를 의미하게 된답니다.
   
우리는 태어나고 살아가는 동안 많은 사람을 만나고 ,인연을 맺고 상호 의존적으로 상호작용을 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모든 인연의 결과이다. 우리의 삶은 과거의 행동에 의해 결정되고, 현재하는 행동은 미래의 인연을 형성한다."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인연맺음은 또한 지혜가 필요 하기도 합니다. 순간의 인연이 나를 발전 하게도 피폐 하게도 할 수 있는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끊임없이 부처님법을 공부하고, 기도해야 하는 이유기도 한 것 같습니다. 또한 모든 존재는 연결되어 나의 행동이 다른 존재에게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특히나 부모 자식간의 인연에서 아주 잘 관찰 할수 있는것 같습니다. 부모가 아프면 자식에게 영향을 주고, 자식이 아프면 부모가 아픕니다. 우리는 서로가 연결되어 밀접하게 영향을 주므로 보시바라밀이 필요하며, 자비가 바탕이된 인연이어야 하는것 같습니다. 이런 인연의 관계여야 비로소 나의 성장과 변화도 일어나리란 생각이 듭니다. 내가 나로 존재 한다는건 무수한 인연의 결정체라 할 수 있을것 같습니다. 무시이래 환생을 거듭하며,  나를 성장시키는 인연이 되어준 모든 인연에 감사하며, 나아가 다른이에게 선한 영향력 으로서의 인연이 되어야 겠다는 발원을 해봅니다.

흰구름님의 댓글

흰구름 작성일
#*덕현(최성일)
덕현 숙제 올립니다.
인연(因緣)은 인·연·업·과(因緣業果)의 줄인 말입니다. 인은 ‘나’요. 연은 나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이며, 업은 인인 내가 연과의 관계 속에서 마음과 입과 몸으로 짓는 생각과 말과 행동이며, 과는 지은 업에 따른 과보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즐겨 쓰는 단어 중 하나인 인연. 이 인연은 부처님께서 최초로 쓰신 불교용어이며, 불교에서는 우리들 삶의 전 과정을 한마디로 요약하여 '인연'이라고 합니다. 지금 내가 받고 있고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이 인연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이 나라에 태어난 것도 인연이요. 현재와 같은 부모를 만나고 부부가 되고 자식을 두는 것도 인연이며, 괴로움을 받는 것도 즐거움을 누리는 것도 모두가 인연의 결과인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에서 흔히 말하는 숙명론이나 운명론의 입장에서 보면 모든 사람의 운명은 태어나면서부터 결정되어 있다고 주장합니다. 곧 사주팔자대로 살거나, 전생의 업보대로만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타고난 것은 어쩔 수 없다'고 말합니다. 스스로의 의지와 노력이 아무리 강할지라도 삶의 흐름을 바꾸어 놓을 수는 없다고 주장합니다. 과연 그렇다면 이 세상에서 열심히 살 자가 몇이나 되겠으며, 남을 위해 노력할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그리고 또 한 부류의 사람들은 인간의 본성을 성선설(性善說)`성악설(性惡說) 등으로 분류하기도 합니다. 인간의 본성이 '본래부터 착하다'. 본래부터 나쁘다' 를 논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도 불교에서는 인연설로 풀이하고 있습니다. 본래부터 선하게 또는 악하게 태어난 것이 아니라, 좋은 인과 좋은 연이 화합하면 삶이 착하게 발현되고, 그릇된 인과 어긋난 연이 만나면 삶이 그릇된 모습으로 나타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불교에서는 숙명론도 운명론도 성선설도 성악설도 따르지 않고 있습니다. 오로지 인연설을 내세워, 모든 것이 나하기에 달렸음을 일깨우고 있으며, '나'의 마음가짐과 행위로 말미암아 지금의 내 삶이 있게 되었다는 것을 천명하고 있습니다.

 지금 부귀영화를 누리거나 괴롭고 힘들게 사는 것 모두는, 과거에 심어 놓았던 씨(인因)가 바로 이 시간 전까지의 여러 가지 주변 환경(연緣)과 노력(업業)에 의해 맺어진 결실(과果)일 뿐, 절대자나 운명에 의해 이렇게 사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만 한 가지, 단순히 금생의 마음가짐이나 행위만으로 이생의 과보가 있게 된 것이 아니라고 설합니다. 오히려 눈에 보이고 능히 기억할 수 있는 금생보다는, 감지할 수도 기억할 수도 없는 전생의 인연과 업이 더 크게 작용할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금생에 특별히 불교공부를 많이 하지 않았는데도 훌륭히 법사 노릇을 하는 사람은 과거생에 불교공부를 많이 하였기 때문이요. 전생에 도를 많이 닦은 사람은 현생에서 어려움 없이 도를 닦아 이룬다고 합니다.

 
부잣집에 태어나 평생을 편안하고 풍족하게 사는 사람은 과거 생에 복을 많이 지었기 때문이요. 현생에서 특별히 예능공부를 하지 않았는데도 초인적인 실력을 발휘하는 이들이 종종 있는 것은 전생에 익힌 예술적인 재능 덕분입니다.

 또 과거 생에 장원급제를 하겠다고 원을 세운 사람은 사법고시나 대학시험 등에서 수석합격을 하여 이름을 떨치게 되고, '꼭 한번 부자가 되어 보리라'고 원을 세운 사람은 일생에 한번은 돈을 많이 벌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산중의 절에 잠깐 머물면서 ‘참 좋다’는 감정을 일으키고는, ‘나도 다음 생에는 승려가 되리라’고 원을 세우게 되면 내세에 출가하여 스님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원(因인)을 세우기만 하고 충분히 복(緣業연업)을 쌓지 않은 사람의 경우에는 평생 스님으로 지내기가 용이하지 않으며, 일시적인 부자로 그치거나, 잠깐 수석합격의 기쁨을 누리는 것으로 끝을 맺는 경우가 많습니다.

뿐만이 아닙니다. 최고의 권력을 누리다가 자리에서 물러난 후 비난을 받으며 명예롭지 못하게 살아가는 사람도 있고, 처음에는 죽도록 사랑하던 연인이나 부부가 나중에는 말할 수 없는 상처를 서로에게 남기고 갈라서는 경우도 많습니다.

 왜 이렇게 되는 것인가? 모두가 인·연·업·과, 곧 인연의 법칙 따라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모든 일은 우연히 이루어지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좋은 일이거나 궂은일이거나 내가 짓고 내가 받을 뿐입니다. 이 간단한 진리를 모르기 때문에 인간은 남을 원망하거나, 스스로를 비관하고 회의에 빠져들어 괴로워합니다.

 하지만 ‘나’ 또는 ‘나’의 주위에서 일어나는 기쁘고 슬픈 일들 모두가 나로 말미암아(因인) 생겨난 일이요. 내가 관련되어(緣연) 이루는 일들이니 어찌 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해 인연법으로 비추어 보면서, ‘나’를 가꾸고 다스려야 평안과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인연법을 달리 ‘의타기(衣他起)’라고 표현하셨습니다. ‘나’ 혼자만의 힘으로 이룩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것과 서로 의지하여 일어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른 것’을 무시하고 ‘나의 것’ 만을 추구 해 보십시오. 남을 무시하고 나만 홀로 우뚝 서려고 해 보십시오. 나만 행복하면 남은 불행해져도 좋다는 생각으로 살아보십시오. ‘나’는 결코 행복해질 수도, 높이 올라설 수도 없습니다. 오히려 남이 나를 받쳐주지 않기 때문에 항상 밑바닥에서 살 수밖에 없고, 고독과 불행만을 되씹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법칙입니다. ‘그렇게 되게끔 되어 있는’ 법칙입니다. 인연 속에서 나쁜 업을 지으면 꼭 나쁜 과보가 돌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인·연·업·과의 법칙에는 예외가 없습니다. 선인(善因)을 심었으면 선과(善果)가 돌아오고 악인을 심으면 악과가 돌아옵니다. 내가 남을 해하였는데 어떻게 편히 살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명심해야 합니다. 나에게 다가오는 모든 인연의 주체는 바로 '나'라는 것을!

 내가 나의 이익과 나의 사랑에 빠져 남을 무시하고 해치고 손해를 입히면 악연을 만들게 되고, 내가 '나와 남을 함께 살리는 생각을 하고 서로를 살리는 행동을 이루어 내면' 좋은 인연을 맺을 수 있습니다. '나를 어떻게 다스리느냐'에 따라 다가오는 인연도 다른 모습을 띄게 됩니다. 선연이냐? 악연이냐? 이것은 오직 '나' 하기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가만히 주위를 둘러보십시오. 눈길을 옮기고 귀를 기울이는 모든 것에서 우리는 수많은 인연들을 만나게 됩니다. 선연도 만나고 악연도 만납니다. 하지만 그 많고 많은 인연들 중에는 절대적인 선연도 절대적인 악연도 없습니다. 절대적인 불행도 절대적인 행복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인과 연이 잠시 합하여 모습을 나타내었기 때문입니다.

 과거는 이미 흘러갔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자리'입니다. 지금 이 자리를 잘 가꾸면 전생의 업으로 인한 과보를 가벼이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앞으로의 삶이 더욱 좋아지게 됩니다.

 곧 전생 업의 폭우가 몰아칠지라도, 지금 이 자리에서 업을 푸는 쪽으로 마음을 잘 다스리고 바르게 실천하면, 폭우의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을 뿐 아니라 더욱 윤택한 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 마치 비바람을 잘 견딘 초목이 푸르름을 더하듯이···. 

 
부처님께서는 강조하셨습니다.

 “인연과 업보를 바로 보아라. 모든 것은 인과 연의 화합으로 생겨나고, 인과 연이 흩어지면 자연히 소멸 된다. 인 하나만으로 존립하는 것도, 연 하나만으로 생겨나는 것도 없으며, 전생의 업보만으로 현생을 사는 것도 아니다. 인연의 법칙 속에서 가장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은 언제나 근본인(根本因)이 되는 ‘나의 마음가짐’이다”.

 이제 우리는 전생의 업보를 참회하면서 바른 마음가짐으로 현세의 업을 잘 닦아가는 조화로운 불자가 되어야 합니다. 업보는 인과 연이 모여서 생겨나는 것! 지금 이 자리에서의 '나'의 마음가짐과 행동은 과거의 업을 어떤 식으로 싹 틔울 것인가를 결정짓는 연으로 작용함과 동시에 미래의 씨가 됩니다.

 실로 '지금 이 자리'는 과거의 맺힌 업을 푸는 과의 자리이면서 새로운 업을 짓는 인의 자리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이 자리에서 어떠한 마음가짐을 갖느냐에 따라 맺힌 업을 풀고 업을 더욱 원만하게 가꿀 수도 있으며, 새로운 악업을 맺어 더 나쁜 상태로 자신을 몰고 갈 수도 있습니다.

 맺느냐? 푸느냐? 잘사느냐? 못사느냐? 이는 오직 지금 이 자리에서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으며, 이것이 부처님께서 설하신 인연법의 진정한 까닭입니다.

 인생을 바꾸고자 한다면 부디 인연법부터 믿으십시오. 나의 마음가짐과 나의 실천이 나의 '지금 이 자리'를 바꾸고 주변을 바꿉니다. 인연의 도리를 알고 인연법을 믿으면 능히 지난날의 업을 가벼이 만들고 향상의 길로 나아가게끔 합니다.

불교입문 법공양 2011.11호 발취


예를 들만한 일이 딱히 떠오르지는 않으나 내가 하는 행동의 결과가 어떻게 나타날지는 지금의 나에게 달렸다고 하는데 체력이 되고 정신이 그나마 또렷할 때 공부해야지 나중에는 하고 싶어도 못할 것같습니다. 하루하루 시간이 아까운 줄을 생각하겠습니다.

흰구름님의 댓글

흰구름 작성일
#*능현(최수곤)
능현 숙제 올립니다.

세상사의 모든 것은 관계가 있으며 관계된 모든 것은 인연(因緣)이 된다고 합니다. 원인과 조건들이 서로 관계하여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그시대 그장소에 존재 했으므로 존재하는 모든 것과 어루러져 결과라는 과실이 탄생하는 것입니다. 이는 모든 사물, 이치, 생물 그리고 인간사 등에 해당 됩니다.
인간의 관점에서 인연이란 소중한 것도 있지만 덜 소중하고 지워 버리고 싶은 인연도 있으리라 어릴적 학교라는 울타리 속에서 무수하게 많은 인연이 있고 그안에서 생겨난 좋고 나쁜 관계들도 있다. 누구나 학창시절에 한번쯤은 친구들과 말다툼을 한 적도 있으리라 그리고 크게 싸운 적도 있고 누군가를 괴롭힌 관계도 있으리라 또는 친절하게 누군가를 대했을 수도 있으리라. 이렇듯 싫든 좋든 어떤 행동의 관계로서 만들어지는 인연이다. 따라서 누눈가의 기억속에 나는 멍청하거나, 존재감이 없거나, 의롭거나, 꽤 괜찮은 놈 등 다양하게 남아 있으리라… 

나와 우리 부모님은 어떤 인연일까 …. 아버지는 내가 마흔이 되기 전에 돌아 가셔서 은혜를 갚지 못하였으니 아버지와 나와의 인연은 진빚을 되찾는 인연일까.. 내가 아버지께 전생의 빚을 다시 받으려고 태어 났을 수도 있겠다. 어머니는 생존해 계시나 옆에서 모시지 못하고 있으니 내가 은혜를 갚는 인연은 아닌듯 하고 이 또한 전생의 빚을 다시 받으려는 인연인 듯 하다. 
부모 자식의 인연을 전생의 과보에 의한 관계로 풀어보면 하나의 관계가 아닌 억겁의 관계를 통해 형성되었다고 어디서 읽은 듯 하다. 그처럼 인연에 따라 스쳐가는 인연이 있지만 매우 중한 인연도 있다. 
내가 미국에 와서 생활하고 10년 넘게 있으리라고는 과거에는 생각하지 못했다. 돌이켜 보면 지난 세월동안 좋은 관계를 유지 한 것도 있고 좋지 못한 관계를 가진 것도 있다. 사람, 사물과의 관계를 통해  결과를 만들고 억겁을 통해 인연이라는 것으로 형성된다고 믿는다면 현재의 모든 관계에 좀 더 신중하고 정성을 다해 이런 관계를 좋은 인연으로 만들고자 하는 마음을 우선 내도록 노력해 보아야 겠습니다.
의문이 드는 것은 모든 것이 억겁의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 관계를 갖고 있다가 인연이 된다면 피하고 싶은 인연의 경우 이러한 관계를 물리고 다시 만들 수는 없는 걸까? 
굳이 다시 이생에서 관계를 맺으면서 새로운 관계(정화된 관계)를 가지고 억겁을 통해 보다 나은 인연으로 되어야만 하는 걸까? 
깨달음 해탈의 세계, 성불하면 윤회 하는 이러한 관계, 인연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라……
제 생각을 가볍게 적어 보았습니다.

흰구름님의 댓글

흰구름 작성일
#*보각(김다한)
저는 부처님의 인연법에 대한 가르침은 이 세상에 일어나는 현상의 원인에 대한 정확한 고찰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양한 종교와 문명권의 사람들은 현상의 원인에 대해 다양한 믿음 또는 해석을 가지고 있습니다. 신의 계획이라던가, 우연이라던가, 운명, 사주팔자 등등. 하지만 부처님께서는 어떤 일 또는 현상이 벌어질때는 인과 연이 화합해서 벌어진다는 사실을 궤뚤어 보셨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우리 인생에서 벌어지는 수 많은 일들은 어떤 하나의 독립된 이유로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결론에 다다릅니다. 저에게 연기법이 가르쳐 주는 것은 제 인생에서 벌어지는 일은 사실 무궁무진한 연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제가 완벽하게 통제하거나 알 수 없다고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또 같은 맥락에서 이 무궁무진한 연을 제가 통제할 수 없기에 나에게 벌어지는 일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인욕바라밀이 연기법에 대한 지혜와 상통한다고 생각됩니다.

흰구름님의 댓글

흰구름 작성일
#*정진(김효성)
정진 숙제 올립니다. 
부처님의 가르침과 인연을 맺은지도 10년쯤 되는것 같습니다. 
그중의 대부분은 보현사와의 인연 입니다.
훌륭하신 스님께서 정법을 가르치신다는 말씀에 이끌려서 왔고, 열심히 공부하시는 도반님들과 함께 훌륭한 가르침을 받을수 있는 인연이야말로 저의 인생 후반기에 가장 큰 행운 입니다.  끝자락에라도 메달려서 인연의 끈을 놓지 않는다면, 훌륭하신 도반님들의 반의반이라도 성취를 한다면 부처님의 크나큰 가피라고 생각합니다. 

끝으로, 인연에 대한 저의 생각은, 존재하는 모든것은 인연으로 엮여 있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인연으로 저에게 다가오신 모든 분들과 존재들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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